나의 사주팔자
새해가 되면 재미삼아 사주를 보시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서도 저의 사주를 보신 적이 있습니다.
내심 좋은 직업이나 큰 돈을 벌 수 있는 사주를 기대하셨을 턴데 결과는 그렇지 못하였나 봅니다.
그런 사주를 타고난 것이 저의 원죄인것처럼 부모님께 죄송스러웠고 폼나지 못한 미래에 암울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사주풀이를 알려주시던 중간에 의아한 표정으로 제가 앞으로 말술을 마실 꺼라 역술가가 강조했단 얘기도 들려주셨지만 그 땐 흘려들었지요. 모두 설마했습니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 엄청난 양의 음주와 가무를 즐기게 되면서 그 역술가를 찾아 뵙고 조언을 청했습니다.
덕분에 역학에 관심이 생겼지만 저의 지적 능력으론 공부하기 너무 어려워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사주는 네 개의 기둥이란 의미입니다. 집에는 군데 군데 하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있습니다.
설계 시 기둥을 어느 위치에 세우느냐에 따라 내부구조가 달라집니다.
방이나 거실의 크기, 밖을 내다보는 창문, 인테리어 등이 기둥위치에 따라 변경될 것입니다.
사람도 태어나는 년, 월, 일, 시에 따라 사주라는 네 기둥이 각기 다른 위치에 세워지고 이를 근거로 개인의 인생설계도가 판이하게 틀려진다 합니다.
따라서 사주를 제대로 풀어낸다는 것은 예상문제와 모범답안을 미리 입수해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기에 용하다는 분의 역술원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저는 사주가 미래예측의 기능보다는 타고난 자신을 알도록 도와주는 사례집이라 생각합니다.
예술에 재능이 있는지, 학자처럼 공부가 즐거운지, 모험심과 투지가 넘치는지, 사업에 안성맞춤인 성격인지 많은 예시들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MBTI, 애니어그램이란 심리검사도 있습니다. 인간의 성향을 유형별로 이해하고 직업과 진로를 정하는데 훌륭한 참고자료로 사용됩니다.
사주나 심리검사나 안개 속을 걷는 인생에 도움을 주고자 만든 것이겠지요
우리는 검정색 점이 네 군데 찍혀 있는 도화지를 탄생과 함께 선물로 받아 왔습니다. 조그마한 네 개의 점을 사주라 합니다.
성격과 환경이라 불러도 될 이 점들은 이미 그려져 있으므로 어쩌지 못합니다.
하지만 네 점을 제외한 나머지 넓은 여백은 가능성으로 주어진 몫입니다.
여기엔 어떤 그림을 그리던지 다 허용됩니다. 채울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원하는 삶을 표현하면 됩니다.
작년 말부터 광장의 촛불이 활활 타올라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후를 상상해 봅니다.
성향과 재능을 탐구해볼 겨를도 없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정신없이 쫒아 대다수 젊은이들은 직무전문인으로 훈련되어 사회로 밀려나갑니다.
이제 다가올 사회에서는 인생의 여러 가능성을 치열하게 탐험하고 모색할 수 있는 여유가 보장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넘어지고 실패해도 일으켜 세워 다시 도전하게끔 격려하고 지원하는 관용과 포용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존재가치를 불사를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 타고난 재능을 펼치는 것이야 말로 행복의 필수조건일 테니까요.